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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 거품의 위험성
주식 거품의 위험성

거품의 시작 – 남해회사 사태

1711년에 설립된 남해회사는 '무역회사'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상은 국가 채무를 떠넘기기 위한 기업에 불과했습니다. 투자자들은 이 회사가 어마어마한 이익을 낼 것이라 믿고 몰려들었고, 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았습니다. 하지만 실제 수익 구조가 부실하다는 점이 드러나자, 1720년에 주가는 폭락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재산을 잃었습니다. 이 사건은 역사상 가장 유명한 '거품 붕괴' 사례로 기록되며, 'South Sea Bubble'이라고 불립니다.

정치제도의 전환 – 의원내각제 촉진

남해회사 사건은 단순한 금융 붕괴를 넘어서, 영국 사회 전체에 정치적 충격을 안겼습니다. 당시 국왕은 물론이고 의회 의원들까지 주식 투자에 관여되어 있었기 때문에 국민들의 신뢰는 땅에 떨어졌습니다. 그 결과, '책임지는 정부'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로버트 월폴(Robert Walpole)이 사실상 영국의 첫 총리로 활동하며 의원내각제의 기반을 다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정치 제도의 책임성과 견제 기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만든 결정적인 분기점이 되었습니다.

제도적 장치의 등장 – 회계사의 탄생

남해회사 사태 이후, 투자자들은 더 이상 막연한 기대감만으로 기업을 신뢰할 수 없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기업의 재무 상황을 객관적으로 검토하고 감시할 수 있는 전문 직업이 필요해졌고, 회계사(accountant)라는 역할이 제도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재무제표 검토와 감사 활동은 기업 투명성을 확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며, 오늘날 금융 시스템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현재의 거품 사례 [해외 사례]
🏛  남해회사의 데자뷔?

오늘날에도 실체보다 기대감에 의해 과도하게 주가가 오르는 ‘거품주’는 여전히 존재합니다. 아래는 대표적인 사례들입니다.

🚛 Nikola (NKLA) – 실제로는 굴러가지 않은 수소차

Nikola는 "테슬라의 라이벌"이라는 기대를 한몸에 받으며 수소전기트럭 시장의 선두주자로 떠올랐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제대로 달릴 수 있는 트럭조차 없었고, 시제품은 구동 능력 없이 언덕길에서 굴리는 장면을 광고에 사용한 사실이 폭로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창업자 트레버 밀턴은 사기 혐의로 기소되었고, 기업 신뢰도는 급락했습니다. Nikola는 미래 비전을 강조했지만, 실현 가능한 기술 없이 과도한 기대만 끌어모은 대표적인 신기루 같은 거품 기업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 비트코인 채굴 기업 – MARA, RIOT

비트코인 가격이 오르면 주가도 오르고, 내리면 같이 떨어지는 기업들입니다. 실적보다는 가상화폐에 대한 기대에 따라 주가가 급변하는 경향이 있어, 투기성이 짙은 거품주로 평가받습니다.

현재의 거품 사례 [국내 사례]
💻 새롬기술(새롬통신) 거품 사건 한국의 닷컴버블 대표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 초반, 전 세계적으로 '인터넷 혁명'이 일어나며 한국에서도 벤처 열풍이 불었습니다. 그 중심에 있던 기업이 바로 새롬기술(새롬통신)입니다.

새롬기술은 '다이얼패드(Dialpad)'라는 인터넷 전화 프로그램으로 유명세를 탔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인터넷으로 공짜로 전화하는 기술'에 매료되어 열광적인 투자를 이어갔고, 그 결과 새롬기술은 코스닥 상장 후 몇 달 만에 주가가 100배 가까이 오르며 시가총액 4조 원을 돌파했습니다.

그러나 실질적인 수익모델이 전혀 뒷받침되지 않은 채, 지나친 기대감만 부풀어 있었고, 2000년 미국 닷컴버블 붕괴 여파로 한국 벤처시장도 무너지며 새롬기술은 상장폐지 수순을 밟았습니다.

🧨 이 사건은 한국 IT 벤처 역사상 가장 상징적인 '거품 붕괴' 사례로 남아 있으며, 이후 벤처업계는 실적 기반 투자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새롬기술은 오늘날에도 "기술은 있지만 수익모델이 부실한 기업"의 대표 경고 사례로 자주 언급됩니다.

🎬 새롬기술과 배우 박중훈의 관계는?

1️⃣ 💡 광고 모델 그 이상의 존재
박중훈은 단순한 CF 모델이 아니라, 1999년부터 새롬기술의 공식 홍보대사로 활동하며 다이얼패드의 인지도를 크게 끌어올렸습니다. “인터넷으로 공짜 전화!”라는 콘셉트를 대중에게 알리며, 새롬기술의 벤처 신화를 상징하는 인물이 되었죠.

2️⃣ 💸 초기 투자자로서의 참여
그는 단순히 광고만 찍은 게 아니라, 실제로 초기 투자자로서 주식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새롬기술이 주가 100배를 기록할 당시 큰 수익을 얻은 연예인 투자자 중 하나였고, 이로 인해 “연예계 대표 벤처 투자 성공 사례”로 주목받았습니다.

3️⃣ ⚠️ 거품 붕괴와 그 이후
2000년 닷컴버블 붕괴와 함께 새롬기술 주가도 폭락하면서, 박중훈의 투자 손익은 공식적으로 공개되지 않았지만 이 사건은 연예인이 벤처 기업에 얼굴뿐 아니라 자금까지 참여했을 때의 위험성에 대해 사회적 경각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후 연예인의 벤처 투자 활동에 대한 관심과 경계가 동시에 생겨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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